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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안의 갈등은 지금 이 순간만의 문제일까요?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자꾸 확인하게 됩니다. 어르신과 보호자 사이의 갈등을 들여다보면, 수십 년 전 부모 세대부터 이어져 온 대화 방식과 감정 반응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웬의 다세대 가족치료는 바로 그 흐름을 보게 해주는 관점입니다.
갈등은 지금 만들어진 게 아니다 — 다세대전수의 맥락
보웬 가족치료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다세대전수(multigenerational transmission)입니다. 여기서 다세대전수란, 부모 세대의 정서적 반응 방식과 관계 패턴이 자녀 세대, 손자녀 세대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단순히 성격을 닮는 게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대물림된다는 개념입니다.
제가 방문요양센터에서 일할 때, 보호자가 어르신의 모든 결정을 대신하려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처음에는 지극한 효심처럼 보였는데,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어릴 때부터 불안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과잉개입'을 학습해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 세대도, 그 부모 세대도 그렇게 해왔다는 말이 나오면, 이게 단순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가계도(genogram)는 이런 맥락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도구입니다. 가계도란 여러 세대에 걸친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와 정서적 패턴을 도식으로 나타낸 것으로, 단순한 가족 구성표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분석 도구입니다. 실제 현장에서 완전한 가계도를 작성하기는 어렵지만, 어르신의 자녀 관계, 주된 보호자가 누구인지, 형제자매 간 갈등이 있는지 정도만 파악해도 가족의 정서적 흐름을 읽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국내 가족 상담 분야에서도 다세대적 관점의 중요성은 꾸준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한국가족치료학회에 따르면 가족치료 실천에서 세대 간 관계 패턴 탐색은 문제 행동의 맥락을 이해하는 핵심 과정으로 권고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가족치료학회](https://www.kafta.or.kr)).
삼각관계,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니
삼각관계(triangulation)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채 제3자를 끌어들이는 현상입니다. 여기서 삼각관계란, 갈등 당사자들이 서로 직접 소통하는 대신 제3자를 통해 긴장을 분산시키거나 해소하려는 구조적 패턴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현장에서 당해본 경험입니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에서 일할 때, 어르신이 자녀에 대한 서운함을 저에게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생활지원사와 저에게는 매번 같은 서운한 감정을 쏟아내셨습니다. 처음에는 충분히 들어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구조가 어르신과 자녀 사이의 직접 소통을 오히려 막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보웬은 이런 상황에서 탈삼각화(detriangulation)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탈삼각화란, 삼각관계의 구조에서 벗어나 각 당사자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사회복지사가 어느 한쪽 편에 서거나 감정적으로 합류하지 않고, 당사자들이 서로를 향해 직접 말할 수 있도록 구조를 정리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법이 나-전달법(I-message)입니다. 나-전달법이란 상대방의 행동을 지적하는 대신 "저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습니다"처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방식으로, 정서적 충동에 의한 즉각적 반응을 줄여주는 기법입니다. 실제로 어르신께 "자녀에게 직접 말씀해보신 적 있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오래된 관계 방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삼각관계를 인식할 때 확인해야 할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어르신이 같은 갈등 내용을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에게 반복적으로 토로하는가
- 보호자가 어르신 대신 불만을 기관에 전달하며 중간자 역할을 요청하는가
- 가족 구성원 중 특정인에게 돌봄 부담과 감정 부담이 동시에 집중되는가
- 가족 간 직접 대화 없이 제3자를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자아분화, 노인복지 현장에서의 실전 적용
보웬 이론에서 자아분화(differentiation of self)는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입니다. 자아분화란 가족과의 정서적 연결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독립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분화 수준이 낮을수록 타인의 감정에 쉽게 휘말리고, 삼각관계에 끌려 들어갈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어르신과 보호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어르신은 자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필요한 도움을 끝까지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보호자는 불안감 때문에 어르신의 판단을 기다려주지 못했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 상대방의 감정에 지나치게 반응하느라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자아분화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거나 "상대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의 경직된 반응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분화가 잘 된 상태에서는 가족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 불편한 것을 상대에게 직접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가 장기적으로는 가족 전체의 갈등 수준을 크게 좌우합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상당수가 자녀와의 관계에서 의사소통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노인 정서적 고립과 우울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https://www.mohw.go.kr)).
보웬 가족치료를 현장에서 가족치료 형식 그대로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자녀가 멀리 살거나 상담 참여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고, 어르신이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웬 이론을 직접적인 치료 기법이 아니라, 가족관계를 읽는 관점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하고, 특정 구성원을 문제의 원인으로 단정짓지 않으면서, 각자가 조금씩 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이 노인복지 현장에서 가장 실천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가족 안의 긴장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오래된 관계 방식의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복지사가 그 구조를 파악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르신과 가족에게 훨씬 더 의미 있는 개입이 가능해집니다. 보웬 이론이 현장에서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더라도,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배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현장 경험과 개인적인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임상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
--- 참고: 사회복지실천기술론 보웬식 가족치료 : 다세대 가족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