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정신역동모델 (훈습, 초점화, 역전이)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현장에 처음 나갔을 때 설명 한 번이면 어르신들이 도움을 받아들이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나는 괜찮다", "남한테 폐 끼치기 싫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책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문제는 설명의 횟수가 아니라, 어르신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함께 걷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복이 설득이 되는 순간, 훈습이란 무엇인가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십니까? 분명히 잘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주에 만났을 때 상대방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요. 저는 노인복지 현장에서 그 경험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정신역동모델에서는 이 상황을 훈습(Working Through)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훈습이란,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내면 갈등이나 문제를 한 번의 통찰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만남과 이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자아통합(Ego Integration)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기법입니다. 자아통합이란 자신의 감정, 경험, 행동 방식을 하나의 이해 안에서 일관되게 바라볼 수 있는 심리적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사례를 떠올리면, 식사 문제가 있어 식이 지원 서비스가 필요한 어르신께 처음에 서비스를 안내했을 때 바로 거절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다음 방문에서 똑같은 안내를 반복하는 대신, 어르신이 왜 도움받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시는지부터 물어봤습니다. 그제서야 "남한테 신세 지면 내가 약해 보인다"는 속마음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핵심이 하나 있습니다. 훈습에서 사회복지사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상투적 반복입니다. 같은 말, 같은 톤, 같은 순서로 설명을 되풀이하는 것은 오히려 클라이언트를 지루하게 만들고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차이가 컸습니다. 어르신의 반응에 따라 표현을 바꾸고, 그날의 상황에 맞게 다시 말씀드렸을 때 비로소 대화가 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훈습 과정에서 사회복지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클라이언트가 보이는 저항(Resistance)을 거부가 아니라 심리적 방어로 이해할 것. 저항이란 클라이언트가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내면의 갈등을 회피하려는 반응을 말합니다.
- 같은 핵심 주제를 다루되 매번 새로운 언어와 접근 방식으로 전달할 것
-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을 것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복지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대상 복지 서비스의 거부 및 이용 중단 이유 중 상당 비율이 심리적 부담감과 자존심 문제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https://www.kihasa.re.kr)). 이 수치는 어르신이 서비스를 모르거나 정보가 부족해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래서 훈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대화가 흩어질 때와 감정이 섞일 때, 초점화와 역전이
대화를 하다 보면 어르신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며느리 이야기, 무릎 아픈 이야기, 이웃집 이야기가 뒤섞이다 보면, 저도 어느 순간 "지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라고 멍해질 때가 있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기법이 바로 초점화(Focusing)입니다.
초점화란, 클라이언트의 이야기 속에서 핵심 문제를 찾아 대화의 방향을 정리해 주는 기술입니다. 산만하게 흩어진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선입견, 혼란, 가정들을 드러내어 클라이언트 스스로 자신의 사고 흐름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제가 실제로 자주 쓴 표현이 있습니다. "어르신, 오늘 말씀 중에 가장 불편하신 게 식사 문제인지, 병원 이용 문제인지 먼저 한 가지만 같이 확인해 볼까요?" 이 한 마디로 대화가 정리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물론 초점화를 너무 이르게 또는 강하게 사용하면 어르신이 "내 말을 잘라버린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충분히 들은 다음, 자연스럽게 흐름을 잡아드리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이건 솔직히 처음엔 참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자신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역전이(Counter-transference) 문제입니다. 역전이란,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 과거에 자신이 경험한 어떤 관계나 인물에 투영하여 무의식적으로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 클라이언트가 아닌 내 과거의 누군가를 보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저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어르신이 말투나 분위기가 돌아가신 제 가족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 저도 모르게 더 자주 찾아가고 더 오래 상담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는 다른 어르신들과 동일한 상황이었는데도요. 역전이가 무서운 이유는, 그 당시에는 본인이 잘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점입니다.
사회복지 윤리강령에서도 전문적 관계의 객관성 유지는 핵심 원칙 중 하나로 명시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사회복지사협회](https://www.welfare.net)). 역전이는 치료적 관계를 흔들 뿐 아니라, 특정 클라이언트에게 필요 이상의 감정적 에너지를 쏟게 만들어 다른 대상자에 대한 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는 정기적으로 슈퍼비전(Supervision)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슈퍼비전이란 경험 있는 선임 전문가가 사회복지사의 실천 과정을 검토하고 지도하는 체계적인 지원 절차를 말합니다.
결국 훈습, 초점화, 역전이 관리는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의 감정만큼이나 자신의 감정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이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신역동모델의 개입기법이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현장에서 클라이언트를 반복적으로 만나며 같이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 속에 이미 그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론이 실천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 비로소 진짜 도움이 시작된다고 느낍니다.
--- 참고: 사회복지실천론 정신역동모델의 개입기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