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를 잘 제공하면 좋은 사회복지사일까요? 저는 현장에 나가기 전까지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느냐가 서비스 자체보다 훨씬 중요했습니다. 노인 돌봄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그 사실을 온몸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수단우선 가치, 현장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처음 인지활동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저는 준비한 계획표를 착실히 따르는 것이 곧 전문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어르신께 같은 순서로, 같은 활동을 안내했습니다. 그날 기분이 어떤지, 손이 불편하신 건 아닌지 묻지도 않은 채로요. 그게 얼마나 잘못된 방향이었는지는 금방 드러났습니다.
글씨 쓰기를 유독 힘들어하시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제가 계획한 활동지를 앞에 두고 그분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참여를 거부하신 게 아니라, 하고 싶은데 못 하는 상황이 민망하셨던 겁니다. 그때 제가 느낀 건 단순한 미안함이 아니라 제 접근 방식 자체가 틀렸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이 경험이 바로 사회복지실천에서 말하는 수단우선 가치(Means-Oriented Value)와 맞닿아 있습니다. 수단우선 가치란 서비스를 수행하는 방법, 수단, 도구에 관한 가치관으로, 대상자를 어떤 방식으로 대우하고 무엇을 사용해 개입하느냐에 대한 전문직의 태도를 말합니다.
사회복지학자 레비(Levy)는 전문직 가치를 세 가지로 나눴는데,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가치관인 사람우선 가치, 서비스의 결과에 대한 가치관인 결과우선 가치, 그리고 이 수단우선 가치가 그 세 번째입니다. 수단우선 가치가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상자를 하나의 독특한 개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 서비스를 받는 과정에서 대상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
- 사회 변화에 참여하고 역할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서비스 방식 안에 녹여내는 것 이 네 가지가 실제로 현장에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리 풍성한 프로그램도 결국 형식에 불과해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이론이 아닙니다. 글씨 쓰기를 어려워하는 어르신께 그림 맞추기를 제안하는 순간, 그분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직접 봤습니다.
개별화와 자기결정권, 거절에서 배웠습니다
어르신들이 활동을 거절하실 때, 처음에는 어떻게 설득할지부터 생각했습니다. 계획한 프로그램에 참여율이 중요했고, 참여율은 성과지표(Performance Indicator)로 기록되니까요. 성과지표란 서비스의 효과나 목표 달성 정도를 수치로 보여주는 기준으로, 복지기관 운영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평가 항목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설득을 밀어붙일수록 어르신들의 표정이 굳어졌고, 어떤 분은 그 다음 날 프로그램 자체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거절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거나, 그날 가족 생각이 나서 마음이 무거우시거나, 단순히 혼자 쉬고 싶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거절 앞에서 먼저 이유를 여쭤보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별화(Individualization)의 출발점입니다. 개별화란 모든 대상자를 동일하게 보지 않고 각각의 상황, 욕구, 강점을 다르게 파악하여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칙입니다. 사회복지실천의 7대 원칙 중 하나로, 관계 형성의 기본 전제이기도 합니다.
개별화와 함께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개념이 자기결정권(Self-Determination)입니다. 자기결정권이란 대상자가 자신의 삶과 관련된 선택을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권리로, 사회복지사가 이를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의도의 개입도 자칫 통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어르신이 참여를 거절하신다고 해서 그분에게 변화의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게 아닙니다. 레비가 수단에 관한 가치로 언급한 '건설적 변화에 대한 능력과 희망'이라는 개념이 딱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개념은 사람 누구에게나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사회복지사가 해야 할 일은 그 능력을 끌어내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지,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2023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돌봄 서비스 이용자의 만족도에서 '나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항목이 전반적 만족도와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https://www.mohw.go.kr)).
이 수치는 수단우선 가치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서비스 품질과 직결됨을 보여줍니다. 또한 한국사회복지사협회는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통해 클라이언트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개별화된 서비스 제공을 핵심 가치로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사회복지사협회](https://www.welfare.net)).
제가 현장에서 몸으로 배운 것들이 이미 전문직 윤리 체계 안에 담겨 있었던 겁니다.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서 생각해보면, 사회복지실천에서 가치는 추상적인 원칙이 아닙니다. 어르신 한 분이 활동지를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이던 그 장면, 거절의 이유를 듣고 난 뒤 다른 방법을 찾아보던 그 과정이 모두 수단우선 가치가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서비스를 받는 분이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서비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 사실을 이론서보다 먼저 현장에서 배웠다는 게 지금도 가장 값진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 참고: 사회복지실천의 가치와 윤리
